공론 없는 여론조사, 이것이 민주주의인가― 영덕군 원전 유치 여론조사의 문제점과 군민이 요구하는 최소한의 절차
영덕군이 원전 유치를 위한 군민 여론조사를 9일부터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번 여론조사는 ‘여론 수렴’이라는 이름과 달리, 민주적 정당성과 절차적 타당성을 심각하게 결여한 채 졸속으로 추진되고 있다. 전문가 설명회도, 충분한 정보 제공도, 사회적 합의를 위한 공론화 과정도 없이 “3월 30일까지 신청해야 한다”는 일정만을 앞세운 행정은 군민을 설득하기는커녕 불신만 키우고 있다.
여론조사는 결론을 정당화하기 위한 도구가 아니다. 특히 원전과 같은 초대형 국책사업은 지역의 미래와 세대 간 삶의 조건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사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덕군은 원전의 위험성, 경제적 효과의 실체, 장기적 지역 영향에 대한 균형 잡힌 설명 없이 찬반만을 묻는 방식으로 군민의 판단을 요구하고 있다. 이는 사실상 ‘정보 비대칭 상태에서의 선택 강요’에 가깝다.
더 큰 문제는 이해당사자의 범위를 왜곡하고 있다는 점이다. 땅을 매각하고 지역을 떠날 이른바 ‘먹튀’ 가능성이 있는 대상이 여론 형성에 포함되는 반면, 원전으로 인해 직접적·장기적 피해가 예상되는 농업인, 어업인, 관광업 종사자, 소상공인, 그리고 청년·미래 세대에 대한 보호 장치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원전은 단기간의 보상금으로 끝나는 사업이 아니라, 수십 년간 지역의 산업 구조와 이미지를 규정하는 결정이다.
영덕은 ‘관광 영덕’, ‘청정 자연’, ‘정주 가능한 지역’이라는 브랜드를 통해 생존해 온 지역이다. 원전 유치는 이러한 미래 가치를 근본부터 흔든다. 관광객 감소, 농수산물 이미지 훼손, 정주 여건 악화는 단순한 우려가 아니라 이미 다른 원전 인접 지역에서 반복적으로 확인된 현실이다. 인구 소멸을 막아야 할 시점에, 원전은 오히려 젊은 세대의 유입을 차단하고 지역 공동화를 가속화할 가능성이 크다.
그럼에도 영덕군은 원전으로 인한 피해를 어떻게 상쇄할 것인지, 관광 산업을 어떻게 지켜낼 것인지, 정주 여건을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발전 대책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 “경제적 지원”이라는 막연한 표현만으로는 군민의 삶과 미래를 담보할 수 없다. 숫자가 아닌 생활, 보상이 아닌 지속 가능성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다.
군민들이 요구하는 것은 과도한 것이 아니다.
첫째, 충분한 정보 제공과 전문가가 참여하는 공개 설명회가 선행돼야 한다.
둘째, 다양한 계층이 참여하는 공론화 과정을 통해 찬반 논거를 검증하고 토론해야 한다.
셋째, 그 이후에야 비로소 여론조사라는 절차가 의미를 가질 수 있다.
행정 편의적 일정에 맞춘 여론조사는 민주주의가 아니라 형식일 뿐이다. 영덕의 미래는 단기간의 행정 성과가 아니라, 군민 스스로 충분히 이해하고 토론한 끝에 내려야 할 결정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숙의이며, 숫자가 아니라 신뢰다.
영덕군은 지금이라도 여론조사를 중단하고, 군민이 납득할 수 있는 공론의 장을 다시 열어야 한다. 그것이 지방자치의 기본이며, 미래 세대에 대한 최소한의 책임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