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혁
현재 우리군은 원래 영덕(盈德), 영해(寧海) 양군이었던 것을 서기 1914년에 합병(合倂)하여 오늘에 이름
– 원(元) 영덕(盈德) 현(現) 영덕, 강구, 남정, 달산, 지품의 5개 읍면으로 삼국시대(三國時代)에는 야시홀(也尸忽)이라 하였다가 신라통일후 야성군(野城郡)이라 하였고 고려 초엽에 영덕(盈德)으로 개칭하여 현종조(顯宗朝)에 예주(禮州)에 속한 후 감무(監務)를 두었다가 고려말 충선왕(忠宣王)때에 현(縣)으로 되고 조선조 태종(太宗)15년(서기1415년)에 지현사(知縣事)를 두었다가 1914년에 영해(寧海)를 합병하여 영덕군이라 칭하였음
– 원(元) 영해(寧海) 현(現) 영해, 축산, 병곡, 창수 4개면으로 삼한(三韓)시대에는 우시국(于尸國)이라 칭하였고 고구려시대에 군(郡)으로 강등되었다가 신라 탈해왕(脫解王) 23년 (서기 79년)에 지방 관리(官吏) 거도(居道)가 반격하여 신라의 속국이 되었다.
경덕왕(景德王) 정유년(서기 757년)에 전국을 9주(州)로 나눌 때 주(州)로 개칭(改稱), 주장(州長)을 두면서 유린군으로(有隣郡)으로 고쳐졌고, 고려 태조(太祖)가 처음 순시(巡視)하였을 때 주민들이 예의(禮儀)바르고 서로 사양(辭讓)하는 미풍(美風)이 있다하여 예주(禮州)라 칭하였고 현종(顯宗) 임술년(서기 1022년)에 방어사(防禦使)를 두었고 성종(成宗)때에는 단양(丹陽)이라 칭하였고 고종(高宗)시 덕원소도호부(德原小都護府)로 되었으며 후에 예주목(禮州牧)으로 올려 목사(牧使)를 두었고 충선왕(忠宣王) 2년 임술년(서기 1310년)에 영해부(寧海府)로 되었다.
조선 태조(太祖) 6년(서기 1397년)에 진(鎭)으로서 병마절제사(兵馬節制使) 겸 부사(府使)를 두었고 태종(太宗)13년(서기 1413년)에 도호부(都護府)로 되었다가 고종(高宗) 32년(서기 1895년)에 영해군(寧海郡)이 되었으며 서기 1914년에 영덕에 합병되었음.
- 1974.7.10지품면 원전출장소 설치(수암, 복곡, 원전, 지품, 기사, 황장리)
- 1979.5.1영덕면이 영덕읍으로 승격